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벌지 전투 (문단 편집) === 독일군의 훈련 및 경험 부재 === 독일군은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에는 전군의 훈련 상태가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서방의 [[선전포고]]가 이어지고 프랑스 침공을 위해 공격 작전을 담당할 부대에게는 벙커와 기타 방어 시설이 설치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실시했으며, 다른 부대도 훈련을 지속하여 적어도 선봉에서 공격을 담당하는 부대만큼은 1939년의 개전 상황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질적 향상에 성공하였다. 또한 [[스페인 내전]]을 거치면서 정립된 [[임무형 지휘체계]] 덕분에 말단 지휘관과 [[부사관]], 사병에 이르는 개개인까지 높은 수준의 군사적 재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는 프랑스 침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아르덴 대공세 당시에 이미 독일군 전력과 숙련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숙련된 장교들과 부대들은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의 공세에 대부분 끔살당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점으로 끊임없이 밀고들어와 항구란 항구는 닥치는대로 점령하며 팔레즈 포위전에서 연합군들에게 포위되며 압도적 열세에서도 연합군을 노르망디 에서 2달간 묶어두었던 서부전선의 정예병들은 히틀러의 후퇴금지 명령과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 타격을 제대로 받은 서부전선 사령부의 혼란 속에 제대로 탈출하지도 못하고 상당수 잃었다. 그 결과 아르덴 대공세에서는 대부분의 보병들은 4주에서 6주의 훈련만 받거나, 초기에 훈련해둔 산악보병들을 끌어오거나, 헝가리나 체코 등지의 타지역 군들을 끌어모으거나, [[국민척탄병|잔존 현역병, 예비군들을 박박 긁어모아 만든 부대를 보낸다던가]], [[공군 야전사단|이름만 공군인 공군 지상 부대에서 놀던 보병들을 차출하는 식]]으로 급조 사단을 만들어서 대거 동원했다. 물론 이렇게 만든 병력의 수준은 최악으로, 간이 훈련을 받은 자는 물론, 정규 편제였던 공군 지상 부대도 헤르만 괴링의 욕심으로 양질의 보병장비를 지급받았으나, 아예 처음부터 독일군 최악의 전투 능력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팔슈름예거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몬테카시노 전투]]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선에서 명성을 떨친 팔쉬름예거는 여전히 이탈리아 전선에 박혀있었고 팔레즈 포위망으로 서부전선에 배치되어 있던 최정예 팔쉬름예거들은 완전 소멸되어 경험없는 풋내기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미군 1개 [[중대(군대)|중대]]의 방어선을 팔슈름예거 1개 [[연대(군대)|연대]]가 '''반나절 이상 걸려서''' 겨우 돌파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 수준이 정규군과 민병대 사이의 어디쯤으로 뚝 떨어져있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들을 실어 보낼 비행기는 물론 조종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베테랑들로 구성된 팔슈름예거는 동부전선 지키랴 서부전선 지키랴 중요 지역을 방어하느라 공격을 할 여력이 아니었고, 결국 훈련 상태가 좋지 못한 팔슈름예거들이 공격을 맡게되는 참사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여기서 최악의 수는 히틀러가 크레타 전투에서 끔찍한 피해를 입은 팔쉬름예거에게 공수작전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병크를 저지르면서 공수부대지만 사실상 공수훈련조차 받지 못한 지상군으로 만들어버린 상태였다.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병들도 겨우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있으면 일단 운전병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전차는 [[제1차 체첸 전쟁|전차를 몬 경험조차도 없는 병사들이 탑승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동원된 '엘리트' 병력이라는 것도 (한줌의 베테랑을 제외하면) '''독일군 입장에서나''' 그렇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연합군 입장에서는 그저 그런 평범한 병력인 데다가 그나마도 공세 초기에 전투력이 소진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전체적으로 독일군은 공세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나마 동부전선에서 겨우 끌어온 병력들은 베테랑이라고 할만 했지만 전투가 결과적으론 무의미한 탕진으로 끝나며 동부전선의 소중한 자원까지 전부 잃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이 작전에서 그나마 동부전선에서 끌어온 '엘리트 병력'도, 서부전선에서 어떻게든 훈련해둔 병력도, 독일의 주축인 기갑부대마저도 싸그리 사라진 독일군은 나치 독일의 최후의 발악인 [[국민돌격대]]까지 총동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독일은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고 이들로 독일을 지키는데에는 한참 역부족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